저탄고지식단, 살은 빠지는데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요즘 진료실 옆에서 상담을 듣다 보면 “밥을 확 줄였더니 2주 만에 3kg이 빠졌어요”라는 이야기를 꽤 자주 듣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은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방식입니다. 쌀밥, 빵, 면, 과자 같은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 달걀, 치즈, 버터, 견과류, 오일을 늘리는 식단이지요. 처음에는 체중계 숫자가 빨리 내려가 보여서 만족감이 큰 편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전부 체지방 감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과 함께 물이 빠지면서 초반 체중이 빨리 줄 수 있거든요.
저탄고지식단은 왜 체중이 빨리 줄어 보일까요?
일반적인 식사에서는 몸이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바꿔 에너지로 씁니다. 그런데 탄수화물 섭취가 크게 줄면 몸은 지방을 분해해 케톤이라는 물질을 만들고, 이를 에너지원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를 흔히 케토시스라고 부릅니다. 엄격한 저탄고지식단은 하루 탄수화물을 20~50g 정도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밥 한 공기 탄수화물이 대략 65g 안팎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강한 제한입니다.
식욕이 줄었다고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은 소화가 느려 포만감이 오래가기도 합니다. 다만 밥을 줄인 대신 삼겹살, 버터커피, 치즈만 늘리는 식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체중은 줄어도 LDL 콜레스테롤이 오르거나 변비, 입 냄새, 피로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 식단은 체중계 하나로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배변, 수면, 운동 지속력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특히 조심스러운 식단입니다
저탄고지식단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맞지는 않습니다. 특히 약을 먹고 있는 분은 “음식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시작하기보다 먼저 확인이 필요합니다. 당뇨약 중 인슐린이나 설폰요소제 계열은 저혈당 위험이 있고, SGLT2 억제제 계열은 드물지만 케톤산증 위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케톤산증은 단순히 살 빠지는 상태와 다릅니다. 메스꺼움, 심한 갈증, 복통, 숨이 차는 느낌, 의식이 멍한 느낌이 있으면 바로 진료가 필요합니다.
- 당뇨병으로 약을 복용 중인 분
- 신장질환, 요로결석 병력이 있는 분
- 췌장염, 담낭질환, 간질환이 있는 분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 청소년, 고령자, 섭식장애 경험이 있는 분
-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분
이런 경우에는 혼자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에서 eGFR, 간수치, 중성지방, LDL 콜레스테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같은 항목을 같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신장 기능이 낮은 분은 단백질과 전해질 조절이 중요해서 유행 식단을 그대로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한다면 ‘지방 많이’보다 ‘질 좋은 식사’가 먼저입니다
저탄고지식단을 시도하는 분들이 자주 놓치는 부분이 채소와 섬유질입니다. 탄수화물을 줄인다고 해서 채소까지 줄이면 변비가 쉽게 옵니다. 식이섬유가 부족해지고 장내 환경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접시를 떠올리면 조금 쉽습니다. 고기만 크게 올리는 접시보다, 잎채소와 버섯, 오이, 브로콜리, 해조류를 넉넉히 두고 달걀, 생선, 두부, 닭고기 같은 단백질을 곁들이는 쪽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지방도 종류가 중요합니다. 버터, 베이컨, 가공육, 튀김류에 치우치면 포화지방과 나트륨이 늘어납니다. 대신 올리브오일, 견과류, 아보카도, 등푸른 생선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을 섞는 편이 부담이 적습니다. 근데 여기서도 양은 봐야 합니다. 견과류 한 봉지를 무심코 다 먹으면 칼로리가 꽤 큽니다. “탄수화물만 줄이면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말은 실제 상담 현장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 2~4주에 체크할 것
- 어지러움, 두근거림, 식은땀 같은 저혈당 의심 증상
- 변비, 복통, 심한 입 냄새, 불면
- 운동할 때 힘이 급격히 떨어지는지
- 혈압이 평소보다 많이 낮아지는지
- 소변 색이 진해지고 갈증이 심해지는지
초반에는 수분과 전해질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지나친 나트륨 제한을 갑자기 겹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고혈압, 심부전, 신장질환이 있는 분은 소금 섭취를 마음대로 늘리면 안 됩니다. 이럴 때는 본인 질환 기준이 먼저입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신호는 분명히 잡아두는 게 좋습니다
식단을 바꾸는 일은 몸에 꽤 큰 변화입니다. 가벼운 피로감은 며칠 지나며 나아질 수 있지만, 참으면 안 되는 신호도 있습니다. 심한 구토나 복통, 숨이 가쁘거나 과일 냄새 같은 입 냄새가 강하게 나면서 몸이 처지는 느낌, 의식이 흐릿한 느낌은 빠르게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당뇨병이 있는 분이라면 혈당이 아주 높지 않아도 케톤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더 조심해야 합니다.
또 6~12주 정도 시도했는데 LDL 콜레스테롤이 크게 오르거나, 변비가 심해지고, 생리 변화나 탈모, 극심한 피로가 이어진다면 식단을 조정해야 합니다. 체중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밀고 가기에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너무 중요합니다. 식단은 오래 이어갈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평생 밥을 거의 안 먹을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너무 엄격한 방식보다 흰쌀밥 양을 줄이고 단 음료와 간식을 끊는 정도부터 시작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밥을 줄이더라도 몸의 반응은 같이 봐야 합니다
저탄고지식단은 어떤 사람에게는 체중 감량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단 음료, 빵, 과자, 야식이 많았던 분이라면 탄수화물의 질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탄수화물을 적으로 돌리고 지방을 무조건 많이 먹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상담에서 오래 버틴 분들은 대개 극단적인 식단을 한 분들이 아니라, 자신의 혈액검사와 생활 리듬에 맞게 조금씩 조절한 분들이었습니다. 밥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몸이 그 변화를 감당하고 있는지 차분히 확인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