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도시락, 점심으로 매일 먹어도 괜찮을까요?

얼마 전 점심시간에 편의점 냉장 코너를 보는데, 밥은 거의 없고 달걀·닭고기·치즈·아보카도 같은 재료가 들어간 저탄고지도시락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상담실에서도 “밥만 줄이면 살이 빠지나요?”, “회사 점심을 이렇게 바꿔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사실 저탄고지도시락은 잘 고르면 혈당 출렁임을 줄이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는 데 꽤 실용적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무조건 맞는 방식은 아닙니다.
저탄고지도시락은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리는 식사일까요?
저탄고지는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비율을 높이는 식사입니다. 도시락으로 보면 밥, 빵, 면, 감자, 고구마 같은 전분 식품을 줄이고 대신 달걀, 생선, 닭고기, 두부, 견과류, 올리브오일, 아보카도 같은 재료가 늘어납니다.
보통 흰쌀밥 한 공기 210g에는 탄수화물이 대략 70g 안팎 들어 있습니다. 밥을 반 공기인 100g 정도로 줄이면 탄수화물은 약 33g 정도가 됩니다. 엄격한 저탄수 식단은 하루 탄수화물을 20~50g 수준으로 잡기도 하지만, 직장인 점심 도시락에서는 그렇게까지 세게 갈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밥을 3분의 1~2분의 1로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를 충분히 채우는 방식이 오래 가기 쉽습니다.
좋은 저탄고지도시락은 배고픔을 참게 하지 않습니다
저탄고지도시락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탄수화물 숫자보다 ‘한 끼로 버틸 수 있는 구성인가’입니다. 밥만 빼고 닭가슴살 두 조각으로 끝나는 도시락은 처음엔 가벼워 보여도 오후 3시에 과자나 달달한 커피를 부르기 쉽습니다. 그러면 식사 전체 흐름이 흔들립니다.
구성은 이렇게 잡으면 무난합니다
- 단백질: 달걀 1~2개, 닭고기·생선·두부·살코기 중 한 가지를 손바닥 크기 정도
- 채소: 잎채소, 브로콜리, 버섯, 오이, 파프리카처럼 전분이 적은 채소를 도시락의 절반 가까이
- 지방: 올리브오일, 견과류 한 줌보다 적은 양, 아보카도, 들기름처럼 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재료
- 탄수화물: 활동량이 있거나 오후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밥 3분의 1공기, 콩류, 작은 고구마 정도를 남겨두기
근데 여기서 지방을 많이 먹는다는 말을 삼겹살, 버터, 치즈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포화지방이 많은 식사가 오래 이어지면 LDL 콜레스테롤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건강검진에서 LDL 수치가 높았거나 가족력이 있는 분은 기름진 고기보다 생선, 두부, 견과류, 올리브오일 쪽으로 무게를 두는 편이 낫습니다.
체중보다 먼저 봐야 할 숫자는 혈당과 컨디션입니다
저탄고지도시락을 먹으면 초반에 체중이 빨리 줄어 보일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과 함께 수분도 빠지기 때문입니다. 1~2주 사이에 1~2kg이 내려가도 모두 체지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체중계 숫자 하나만 보고 식단을 더 세게 조이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당뇨 전단계나 식후 졸림이 심한 분은 점심 탄수화물을 줄였을 때 오후 컨디션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당뇨약, 인슐린, 혈압약을 쓰는 분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식사량과 탄수화물이 갑자기 줄면 저혈당, 어지럼, 식은땀, 심한 피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약을 복용 중이라면 탄수화물을 과하게 제한하는 방식은 의료진과 먼저 상의하는 게 안전합니다.
편의점·배달 도시락은 나트륨과 소스를 꼭 봐야 합니다
시판 저탄고지도시락은 탄수화물을 낮추려고 밥을 줄인 대신 햄, 베이컨, 소시지, 치즈, 짭짤한 소스를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탄수화물은 낮아도 나트륨이 700~1000mg을 훌쩍 넘을 수 있습니다. 하루 나트륨 목표를 2000mg 안팎으로 잡는다면 점심 한 끼에서 절반 가까이 쓰는 셈입니다.
라벨을 볼 수 있다면 열량, 탄수화물, 단백질, 포화지방, 나트륨을 같이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탄수화물만 낮고 단백질이 10g 이하라면 한 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포화지방이 높고 채소가 거의 없다면 ‘저탄고지’라는 이름은 붙었어도 매일 먹기에는 아쉬운 도시락입니다.
이런 조합은 조금 더 편안합니다
- 구운 닭고기, 삶은 달걀, 샐러드, 올리브오일 드레싱, 밥 3분의 1공기
- 연어 또는 고등어, 데친 채소, 두부, 김치 소량, 현미밥 조금
- 두부스테이크, 버섯볶음, 달걀, 오이·토마토, 견과류 약간
- 소고기라면 기름 적은 부위로 고르고, 치즈와 베이컨은 매일 넣지 않기
이런 경우에는 혼자 밀어붙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저탄고지도시락이 유행처럼 느껴져도, 몸 상태에 따라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성장기 청소년, 신장질환이 있는 분, 췌장염·담낭질환 병력이 있는 분, 섭식장애 경험이 있는 분은 스스로 강한 제한식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식단을 바꾼 뒤 심한 어지럼, 두근거림, 구토, 복통, 숨이 가쁨, 의식이 멍함, 극심한 갈증이 생기면 단순한 적응기로 넘기면 안 됩니다. 당뇨가 있거나 약을 복용 중이라면 더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4~6주 정도 해봤는데 변비가 심해지고 잠이 나빠지거나 생리 주기가 흔들린다면 식단 강도를 낮추는 쪽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탄고지도시락은 밥을 무조건 끊는 도시락이라기보다, 내 몸이 오후에 덜 졸리고 덜 허기지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에 가깝습니다. 저는 오래 가는 식사는 대개 극단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밥을 조금 남기더라도 채소와 단백질을 넉넉히 담고, 기름은 종류와 양을 가려 쓰는 도시락이 결국 몸에도 마음에도 덜 부담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