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 살은 빠지는데 몸에는 괜찮을까요?

얼마 전 진료실 옆에서 상담을 듣다 보니, “밥만 끊으면 되는 거죠?” 하고 묻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저탄고지는 이름 그대로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 비중을 높이는 식사법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밥을 안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몸 상태에 따라 피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탄고지는 어느 정도로 줄이는 식사일까요?
보통 한국식 식사는 밥, 면, 빵, 떡, 과일, 간식까지 합치면 탄수화물 비중이 꽤 높습니다. 저탄고지는 여기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 생선, 달걀, 두부, 견과류, 오일 같은 식품 비중을 늘립니다. 더 강한 방식인 케토 식사는 하루 탄수화물을 대략 20~50g 정도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공깃밥 한 그릇의 탄수화물이 대략 65g 안팎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큰 변화입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체중이 빠르게 줄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과 수분이 함께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체중계 숫자가 확 내려가면 기분은 좋지만, 전부 지방이 빠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좋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당뇨 전단계나 제2형 당뇨가 있는 분 중 일부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였을 때 식후 혈당이 덜 오르는 걸 경험합니다. 미국당뇨병학회 2026년 기준에서도 일부 성인 당뇨 환자에게 탄수화물 감소가 혈당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개인 맞춤 식사와 의료진의 확인이 중요하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실제로 상담실에서도 “아침 빵과 달달한 커피를 줄였더니 오후 졸림이 덜하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저탄고지라는 이름보다, 정제 탄수화물과 당류를 줄인 효과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흰빵, 과자, 설탕 음료를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방의 종류가 정말 중요합니다
저탄고지를 하면서 삼겹살, 버터, 치즈, 가공육 위주로 오래 먹으면 LDL 콜레스테롤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미국심장협회는 케토 식사가 심장 건강 식사 원칙과 잘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유는 포화지방이 늘고, 통곡물·콩류·과일 같은 식품이 줄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방을 먹는다면 생선, 올리브유, 견과류, 아보카도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쪽이 낫습니다. 단백질도 매 끼니 고기만 고집하기보다 달걀, 생선, 두부, 콩류를 섞는 편이 부담이 적습니다. 근데 아주 엄격한 케토식에서는 콩류나 과일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식이섬유가 부족해지기 쉽습니다. 변비, 입냄새, 피로감, 두통이 생기는 분들도 이때 꽤 많습니다.
이런 분은 시작 전에 꼭 확인이 필요합니다
당뇨약 중 SGLT2 억제제를 복용 중인 분은 케토 식사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이 약을 쓰는 사람에게 케톤산증 위험 때문에 케토 식사를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인슐린이나 설폰요소제 계열 약을 쓰는 분도 탄수화물을 갑자기 줄이면 저혈당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경우
- 소아·청소년
- 신장질환이 있거나 신장 기능이 떨어진 경우
- 섭식장애가 있거나 음식 제한에 쉽게 집착하는 경우
- 당뇨약, 혈압약, 이뇨제를 복용 중인 경우
이런 경우에는 혼자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어지러움, 식은땀, 심한 갈증, 구토, 복통, 숨이 차거나 의식이 멍해지는 증상이 있으면 식단 문제로만 넘기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무리하지 않게 시작한다면 이렇게 잡아보면 됩니다
솔직히 많은 분에게는 극단적인 저탄고지보다 “탄수화물의 질을 바꾸는 식사”가 더 오래 갑니다. 흰쌀밥을 완전히 끊기보다 양을 3분의 2나 반 공기로 줄이고, 접시의 절반은 채소로 채우고, 단백질을 손바닥 크기 정도로 챙기는 방식입니다. 음료는 달지 않은 물이나 차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하루 당 섭취가 꽤 줄어듭니다.
시작 전에는 가능하면 체중, 허리둘레, 혈압,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간수치, 신장 기능, 지질검사를 확인해두면 좋습니다. 4~12주 정도 해본 뒤 같은 항목을 다시 보면 내 몸에 맞는지 더 분명해집니다. 체중은 줄었는데 LDL 콜레스테롤이 크게 올랐다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저탄고지는 누군가에게는 식욕 조절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 맞는 만능 식사법은 아닙니다. 밥을 줄였다는 사실보다 내 혈당, 콜레스테롤, 컨디션, 배변, 수면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식사는 몸을 몰아붙이는 방식보다, 내 생활 안에서 덜 흔들리는 방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기준: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Standards of Care in Diabetes 2026, American Heart Association dietary patterns statement, NIH ketogenic diet research upd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