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원인, 유전일까요 아니면 양육 때문일까요?

얼마 전 상담실 옆에서 한 보호자분이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조용히 울먹이셨습니다. “제가 뭘 잘못 키워서 그런 걸까요?”라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자폐 원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덜어내야 할 것은 부모 탓이라는 무거운 오해입니다.
자폐는 하나의 원인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뇌가 발달하는 방식과 관련된 신경발달 특성입니다. 눈맞춤, 사회적 소통, 관심사의 폭, 반복 행동, 감각 예민함 등이 사람마다 다른 조합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름에도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와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안내를 보면, 자폐는 한 가지 사건으로 설명되기보다 유전적 요인과 임신·출생 전후의 여러 생물학적 요인이 겹쳐 위험을 높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즉, “이것 때문에 생겼다”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같은 위험요인이 있어도 자폐로 이어지지 않는 아이도 많습니다.
가장 큰 축은 유전과 뇌 발달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근거가 많은 부분은 유전입니다. 가족 중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거나, 취약 X 증후군·결절성 경화증 같은 특정 유전 질환이 있는 경우 위험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유전이라고 해서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새로 생긴 유전자 변화가 관여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작은 유전적 차이가 함께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제가 자폐 진단을 받은 경우 다음 아이의 발달을 더 세심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생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험이 높아진다는 말과 원인이 확정됐다는 말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불필요한 죄책감이 조금 줄어듭니다.
임신과 출생 전후 요인은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요인으로는 부모의 나이가 높은 경우, 매우 이른 조산, 매우 낮은 출생체중, 임신 중 일부 약물 노출, 산모의 당뇨나 비만, 임신 중 심한 감염이나 면역 관련 문제, 출생 때 산소 부족을 겪은 상황 등이 있습니다. 일부 대기오염이나 농약 노출과의 관련성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관련성이 있다는 말은 “그게 바로 원인”이라는 말과 다릅니다. 예를 들어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 중 대부분이 자폐가 아니고, 자폐 아이 중에도 임신과 출산 과정이 특별히 문제 없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 원인은 퍼즐 조각 여러 개가 겹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백신, 양육 태도, 스마트폰은 원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 중 하나가 백신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5년까지의 근거 검토에서도 백신과 자폐 사이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예전의 논란은 연구 설계 문제와 연구 철회로 이미 크게 흔들린 주장입니다.
부모가 차갑게 대했다거나, 말을 늦게 걸었다거나, 훈육을 잘못해서 자폐가 생긴다는 설명도 현재 의학적 근거와 맞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영상 노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 시간이 너무 길면 언어 자극과 상호작용 시간이 줄어 발달에 좋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폐가 만들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원인 찾기보다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않거나, 12개월 무렵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이 거의 없거나, 16개월이 지나도 의미 있는 단어가 없거나, 하던 말을 잃어버린 경우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눈맞춤이 적고, 같은 놀이만 반복하거나, 특정 소리·촉감·냄새에 유난히 힘들어하는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기다리기만 하기보다 소아청소년과, 소아정신건강의학과, 발달 평가가 가능한 기관에서 상담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소리에 반응이 적다면 청력 문제도 같이 확인해야 합니다. 자폐는 보통 만 2세 전후에도 비교적 신뢰도 있게 평가될 수 있고, 빠른 언어·놀이·사회성 개입은 아이와 가족의 일상을 훨씬 덜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폐 원인을 찾는 마음 뒤에는 대개 “내가 놓친 게 있나”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할 일은 과거를 끝없이 되감는 일이 아니라, 지금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지 알아차리고 그 아이에게 맞는 언어와 환경을 마련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원인이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할 수는 있어도, 동시에 누군가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릴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