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 몸에 맞는 사람과 조심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을까요?

얼마 전 진료실 옆에서 상담을 듣다 보니, “밥만 줄이면 저탄고지인가요?” 하고 묻는 분이 있었어요. 요즘 체중 감량이나 혈당 관리 때문에 저탄고지를 시도하는 분이 많아졌는데, 막상 식단을 보면 고기는 늘었지만 채소와 수분은 줄고, 몸은 더 피곤해진 경우도 꽤 봅니다.
저탄고지는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 비중을 높이는 식사 방식입니다. 다만 “삼겹살을 마음껏 먹는 식단”으로만 이해하면 방향이 조금 어긋납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는 정도, 지방의 종류, 단백질과 채소를 어떻게 채우는지가 몸의 반응을 크게 가릅니다.
저탄고지는 어느 정도로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사일까요?
보통 한국 식사는 밥, 면, 빵, 떡처럼 탄수화물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성인의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높은 편으로 다뤄져 왔고, 실제 상담에서도 “밥은 조금만 먹는다”고 하면서 간식으로 과일, 라떼, 과자, 고구마를 자주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탄수화물 식사는 범위가 넓습니다. 하루 탄수화물을 100~130g 정도로 줄이는 완만한 방식도 있고, 50g 이하로 낮추는 강한 방식도 있습니다. 아주 낮게 줄이면 몸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비율이 커지고 케톤이 늘 수 있습니다. 이때 체중이 빠지는 분도 있지만, 두통, 입 냄새, 변비, 어지럼, 피로감이 같이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밥, 과일, 뿌리채소, 우유까지 한꺼번에 끊는 방식은 부담이 큽니다. 평소 흰쌀밥 한 공기를 매끼 먹었다면 반 공기로 줄이고, 단 음료와 빵 간식부터 줄이는 쪽이 몸의 반응을 보기 쉽습니다. 사실 식단은 오래 이어갈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살이 빠지는 이유가 지방을 많이 먹어서만은 아닙니다
저탄고지를 하면 초반에 체중이 빨리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체지방만이 아니라 수분 변화입니다. 탄수화물은 몸속에서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되는데, 이때 물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갑자기 줄이면 저장된 글리코겐과 수분이 빠지면서 체중계 숫자가 먼저 내려갈 수 있어요.
또 단백질과 지방이 늘면 포만감이 오래가서 전체 섭취 열량이 줄기도 합니다. 밤에 라면이나 과자를 먹던 습관이 사라지면 당연히 체중 감량에 유리합니다. 그러니 “버터를 넣어야 빠진다”기보다는, 정제 탄수화물과 잦은 간식이 줄어드는 효과도 함께 봐야 합니다.
근데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지방을 늘린다고 해서 베이컨, 소시지, 튀김, 가공육 위주로 채우면 혈중 지질 수치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견과류, 올리브유, 들기름, 생선, 달걀, 두부, 아보카도처럼 비교적 질 좋은 지방과 단백질을 섞고, 잎채소와 버섯류를 같이 두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이런 분들은 시작 전에 진료실에서 먼저 상의하는 게 안전합니다
저탄고지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식으로 맞지는 않습니다. 특히 당뇨병 약을 복용 중인 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자료에서도 저탄수화물 식사가 혈당과 체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식사 패턴 중 하나로 언급되지만, 초저탄수화물 식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실행이 어렵고 개인별 조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를 쓰는 당뇨병 환자
-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약을 복용 중인 사람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사람
- 신장질환, 간질환, 췌장질환, 담낭질환이 있는 사람
- 고지혈증 수치가 높거나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
- 섭식장애 경험이 있거나 식단 제한에 심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
특히 SGLT2 억제제 계열 약은 저탄수화물 식사, 금식, 탈수, 급성 질환이 겹칠 때 케톤산증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안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의약품 설명 자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혈당이 아주 높지 않아도 메스꺼움, 구토, 복통, 숨참, 심한 무기력감이 생기면 가볍게 넘기면 안 됩니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처음 1~2주에는 입맛 변화, 변비, 피로감, 운동 능력 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을 적게 마시거나 채소를 너무 줄이면 더 심해집니다. 밥을 줄였는데 변비가 생겼다면 지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이섬유와 수분이 부족한 경우가 흔합니다.
병원에 가야 할 신호도 분명히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가슴 통증, 숨이 차는 느낌, 실신할 것 같은 어지럼, 반복되는 구토, 의식이 멍해지는 느낌, 소변량이 확 줄어드는 증상은 식단 적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당뇨병이 있는 분에게 구토와 복통, 깊고 빠른 호흡이 같이 나타나면 더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혈액검사를 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옵니다. 시작 전과 2~3개월 후에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간수치, 신장기능, 중성지방, LDL 콜레스테롤을 확인하면 내 몸이 이 식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체중만 보고 괜찮다고 판단하기엔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시작하는 편이 덜 흔들립니다
솔직히 저탄고지를 엄격하게 오래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외식, 가족 식사, 회식이 있는 생활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탄수화물 금지”로 잡기보다 “단 음료 끊기, 야식 면류 줄이기, 밥 양 줄이기, 단백질과 채소 먼저 먹기”처럼 생활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이 낫습니다.
- 아침: 달걀, 두부, 그릭요거트처럼 단백질을 먼저 챙기기
- 점심: 밥은 줄이고 고기나 생선, 나물, 샐러드 양 늘리기
- 간식: 과자와 달달한 커피 대신 견과류 소량이나 무가당 음료 선택하기
- 저녁: 면이나 빵 위주 식사를 주 1~2회부터 줄이기
저탄고지는 누군가에게는 체중과 혈당을 다루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구는 몸에 맞게 써야 합니다. 밥을 줄였더니 잠을 못 자고, 예민해지고, 운동할 힘이 사라진다면 그 식단은 지금의 몸에 너무 강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분들께 늘 “잘 참는 식단”보다 “몸이 덜 흔들리는 식단”이 오래 간다고 말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