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식단,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봐야 할까요?

의원에서 식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밥을 끊고 고기만 먹으면 살이 빠지나요?”라는 질문이 종종 나옵니다. 저탄고지식단에 관심이 생기는 마음은 이해됩니다. 다만 밥을 얼마나 줄일지보다 먼저 볼 것이 있어요. 지금 먹는 약, 평소 검사 수치, 그리고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식사인지입니다.
밥을 줄인다고 모두 같은 식단은 아니에요
저탄고지는 탄수화물 섭취를 크게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방식입니다. 국가암정보센터는 일반적인 케토 식단을 전체 열량 중 탄수화물 5~10%, 지방 70~80% 정도로 설명합니다. 하루 2,000kcal를 먹는 사람이라면 탄수화물 10%는 약 50g입니다. 밥 한 공기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이 대략 60~70g인 점을 생각하면 꽤 엄격한 제한이지요. 반찬이나 양념에 들어간 탄수화물까지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탄고지를 말할 때 사람마다 떠올리는 식탁은 다릅니다. 단 음료와 과자를 줄이고 밥 양을 조금 덜어내는 사람도 있고, 밥·과일·콩까지 거의 끊는 사람도 있어요. 두 식사는 몸에 미치는 영향과 지속하기 어려운 정도가 다릅니다. 식단 이름보다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가 중요합니다.
체중이 빨리 줄면 지방도 그만큼 빠진 걸까요?
탄수화물을 크게 줄인 뒤 며칠 사이 체중계 숫자가 내려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몸에 저장된 탄수화물과 함께 붙어 있던 수분이 줄어드는 영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만에 2kg이 빠졌다고 그만큼 체지방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체중 변화는 식사량, 활동량, 수면, 식단을 지키는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혈당 개선이 관심사일 수 있습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탄수화물을 제한한 식사가 일부 사람의 혈당 조절에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식사 방식과의 차이가 작아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탄고지가 누구에게나 더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체중뿐 아니라 혈당, 혈압, 혈중 지질 수치와 식사 뒤 몸 상태를 함께 봐야 합니다.
지방은 무엇으로 채우는지가 중요해요
밥을 덜 먹는 대신 삼겹살, 버터, 치즈, 가공육만 늘리는 식사는 생각보다 쉽게 열량이 높아집니다. 미국심장협회는 엄격한 케토 식단이 심장 건강을 위한 식사 권고와 잘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자주 먹으면 혈중 LDL 콜레스테롤이 올라갈 수 있어요. 검진에서 LDL 수치가 높았거나 심혈관질환이 있다면 지방의 종류를 더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식사를 바꾼다면 채소를 빼놓지 않고, 지방은 올리브유·견과류·생선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에서도 가져오는 편이 낫습니다. 고기만으로 끼니를 채우면 식이섬유가 부족해 변비가 생기기 쉽고, 과일·콩·통곡물을 한꺼번에 끊으면 먹을 수 있는 식품의 폭도 좁아집니다. 예를 들어 점심에 달걀과 생선을 먹더라도 채소 반찬을 넉넉히 곁들이고, 저녁마다 고기만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식입니다.
시작 전 상담이 특히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인슐린이나 혈당을 낮추는 약을 쓰는 분은 식사에서 탄수화물을 갑자기 줄이면 저혈당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약을 스스로 줄이거나 끊지 말고, 식사 계획을 처방한 의료진과 먼저 맞춰야 합니다. 특히 소변으로 당을 내보내는 당뇨약을 복용 중이라면 매우 엄격한 탄수화물 제한의 위험을 꼭 상담하세요.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신장질환이 있는 분, 섭식장애를 겪은 분도 혼자 시작하기보다 개인 상태에 맞는 식사를 의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식단을 바꾼 뒤 가벼운 피로감이나 변비가 생겼다면 먹는 양과 수분 섭취, 식품 구성을 점검하고 증상이 이어질 때 진료를 받는 편이 좋습니다. 식은땀·떨림·심한 허기·멍한 느낌이 나타나면 저혈당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당뇨병이 있는 분에게 구토, 복통, 빠르고 깊은 호흡, 심한 무기력이 생겼다면 혈당 수치가 아주 높지 않더라도 즉시 진료가 필요합니다.
식사를 바꾸는 일은 며칠간 체중계 숫자를 낮추는 것보다 길게 이어집니다. 저탄고지식단이 궁금하다면 먼저 단 음료와 잦은 간식을 줄이고, 밥 양과 반찬 구성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내 몸의 검사 수치와 생활 리듬에 맞는 식사가 결국 오래 가는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