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 살은 빠진다는데 제 몸에도 맞을까요?

얼마 전 진료실 옆에서 상담을 듣다 보니, “밥만 끊으면 되나요?” 하고 묻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저탄고지라는 말이 워낙 익숙해져서 쉬운 식단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몸의 연료를 바꾸는 꽤 큰 변화에 가깝습니다.
저탄고지는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방식입니다. 보통 케토식에 가까운 경우 하루 탄수화물을 20~50g 정도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밥 한 공기 탄수화물이 대략 60~70g 안팎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엄격한 식단입니다.
왜 처음에는 체중이 빨리 줄어 보일까요?
저탄고지를 시작하면 초반 1~2주에 체중계 숫자가 꽤 빨리 내려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빠지는 무게의 일부는 체지방만이 아니라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과 함께 붙어 있던 수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일 만에 2kg 빠졌다”는 경험이 꼭 지방 2kg이 줄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혈당이 덜 오르고, 식욕이 줄었다고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이 포만감을 오래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포만감이 좋다고 해서 베이컨, 버터, 삼겹살 위주로 계속 먹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저탄고지라도 생선, 달걀, 두부, 견과류, 올리브오일, 채소를 곁들이는 방식과 가공육·포화지방 위주 식단은 몸에 주는 부담이 다릅니다.
몸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조심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체중 감량은 어떤 식단이든 오래 유지할 수 있고 총 섭취량이 줄어들 때 잘 일어납니다. 저탄고지도 일부 사람에게는 식욕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 편한 방식은 아닙니다.
특히 당뇨약을 복용 중인 분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인슐린이나 설폰요소제 계열 약을 쓰는 상태에서 탄수화물을 갑자기 줄이면 저혈당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거나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생기면 가볍게 넘기면 안 됩니다.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성장기 청소년, 신장질환·간질환·췌장질환이 있는 분, 담낭을 절제했거나 지방 많은 음식을 먹으면 설사가 심한 분도 혼자 강하게 시작하는 것은 권하기 어렵습니다. 고지혈증이 있거나 가족 중 심혈관질환이 많은 경우에는 포화지방 섭취가 늘면서 LDL 콜레스테롤이 오를 수 있어 혈액검사를 보며 조절하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은 꽤 현실적입니다
저탄고지를 시작한 뒤 머리가 멍하고 피곤하며 입 냄새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흔히 ‘키토 플루’라고 부르는 상태인데, 탄수화물을 급격히 줄이면서 수분과 전해질 변화가 같이 생길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변비: 밥, 과일, 콩류를 줄이면서 식이섬유가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 두통과 피로감: 수분과 나트륨 변화, 섭취량 감소가 겹칠 수 있습니다.
- 입 냄새: 케톤이 늘면서 특유의 냄새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운동 능력 저하: 고강도 운동을 하는 분은 초반에 힘이 빠질 수 있습니다.
- 콜레스테롤 변화: 사람에 따라 LDL 수치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 증상이 있다고 무조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증상이 심하거나 오래가면 식단 강도를 낮추거나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특히 심한 구토, 복통, 숨이 차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느낌, 혈당이 매우 높거나 낮게 측정되는 상황은 바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한다면 ‘지방 많이’보다 ‘탄수화물 질 낮추기’부터가 낫습니다
상담을 오래 보다 보면, 극단적인 방식보다 한 단계 덜어낸 방법이 오래 갑니다. 흰쌀밥을 매끼 큰 공기로 먹던 분이라면 반 공기로 줄이고, 단 음료와 빵·과자부터 줄이는 것만으로도 혈당과 체중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일 때 채소까지 같이 줄이면 몸이 금방 불편해집니다. 잎채소, 버섯, 오이, 브로콜리, 해조류처럼 비교적 탄수화물이 적고 식이섬유가 있는 식품은 식사에 남겨두는 편이 좋습니다. 단백질은 매끼 손바닥 크기 정도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쉽고, 지방은 포만감을 보태는 정도로 쓰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조금 더 안전하게 시작하는 기준
- 처음부터 밥을 완전히 끊기보다 2~4주 동안 서서히 줄입니다.
- 가공육보다 생선, 달걀, 콩류, 두부, 살코기 비중을 높입니다.
- 버터와 크림보다 올리브오일, 견과류, 아보카도 같은 불포화지방을 우선합니다.
- 변비가 생기면 채소, 수분, 활동량을 먼저 확인합니다.
-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시작 전 진료실에 식단 계획을 알려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신호는 따로 봐야 합니다
저탄고지를 하는 동안 체중이 줄어도 몸 상태가 나빠지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일상 기능입니다. 잠을 못 자고, 기운이 너무 없고, 변비나 설사가 반복되고, 생리 주기가 흔들리거나, 운동을 거의 못 할 정도라면 지금 방식이 너무 센 것일 수 있습니다.
당뇨가 있는 분은 혈당 기록을 꼭 같이 봐야 합니다. 혈당강하제를 복용 중인데 식사를 크게 바꾸면 약 조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고혈압약이나 이뇨제를 복용 중인 분도 어지럼, 탈수감, 기립성 저혈압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참고로 하버드 T.H. Chan 보건대학원은 케토식이 체중 감량에 쓰이기도 하지만 장기 지속성, 영양 불균형, 포화지방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심장협회도 심장 건강을 위해서는 채소, 과일, 통곡, 생선, 식물성 단백질, 불포화지방을 중심에 두는 식사 패턴을 강조합니다. 참고 자료: https://www.hsph.harvard.edu/nutritionsource/healthy-weight/diet-reviews/ketogenic-diet/ , https://www.heart.org/en/healthy-living/healthy-eating/eat-smart/nutrition-basics/aha-diet-and-lifestyle-recommendations
저탄고지는 누군가에게는 식욕을 잡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빡빡해서 금방 무너지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환자분들께 “평생 할 수 없는 식단이라면, 조금 느리더라도 내 생활에 붙는 방식으로 낮춰보자”고 자주 말합니다. 밥을 적으로 만들기보다, 내 몸이 편안하게 버틸 수 있는 선을 찾는 일이 더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