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식단, 살은 빠진다는데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얼마 전 진료실 옆에서 상담을 듣다 보니, “밥을 거의 끊고 고기랑 버터 위주로 먹었더니 3kg이 빠졌어요. 계속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요즘 저탄고지식단을 시작한 분들이 꽤 많습니다. 체중이 빨리 줄어드는 느낌이 있고, 혈당이 덜 오르는 것처럼 보여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다만 저탄고지식단은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주는 식단은 아닙니다. 어떤 분에게는 단기간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분에게는 LDL 콜레스테롤이 올라가거나 변비, 피로감, 생리 변화, 폭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로 단정하기보다 내 몸 상태와 검사 수치를 같이 보며 판단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저탄고지식단은 어느 정도로 탄수화물을 줄이는 걸까요?
저탄고지식단은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저탄수화물 식사는 하루 탄수화물을 대략 50~150g 정도로 낮추는 경우가 많고, 케토식에 가까운 매우 낮은 탄수화물 식단은 하루 20~50g 이하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밥 한 공기 탄수화물이 대략 65g 안팎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강한 제한입니다.
문제는 탄수화물을 줄이는 과정에서 밥, 빵, 면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과일, 콩류, 통곡물, 일부 채소까지 같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식이섬유와 여러 미량영양소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삼겹살, 버터, 치즈, 가공육이 늘어나면 포화지방 섭취가 많아질 수 있고요.
처음에 체중이 빨리 줄어드는 이유
저탄고지식단을 시작하면 초반 1~2주 사이 체중계 숫자가 빨리 내려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줄어든 무게가 모두 체지방은 아닐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은 몸속에서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되는데, 이때 물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확 줄이면 저장된 글리코겐과 수분이 같이 빠지면서 체중이 빨리 줄어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식사량 자체가 줄고 간식, 음료, 야식이 줄어들면 체지방 감량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들에서도 저탄수화물 식단이 초기 몇 달 동안 체중과 혈당, 중성지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됩니다. 그런데 1년, 2년으로 길게 보면 균형 잡힌 칼로리 조절 식단과 체중 감량 차이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Cochrane 리뷰에서도 저탄수화물 식단과 균형 잡힌 탄수화물 식단 사이의 체중 감량 차이는 2년까지 크지 않다고 봤습니다.
주의해야 할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을 시작하기 전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뇨약 중 SGLT2 억제제를 복용 중인 분,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성장기 청소년, 신장질환이나 간질환이 있는 분, 췌장염 병력이 있는 분, 담낭 문제가 있는 분,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분은 의료진과 먼저 상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당뇨가 있는 분은 “혈당이 안 오르니까 좋은 식단”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약을 같이 쓰는 상황에서는 저혈당이나 케톤산증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흔하지 않더라도 위험할 수 있는 문제라서, 약을 복용 중이라면 식단을 크게 바꾸기 전에 처방받는 병원에 알려야 합니다.
- 당뇨약, 혈압약, 고지혈증약을 복용 중인 경우
- LDL 콜레스테롤이 원래 높은 경우
- 신장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단백뇨가 있는 경우
- 임신, 수유, 성장기처럼 영양 요구량이 큰 시기
- 식사 제한 후 폭식이나 죄책감이 반복되는 경우
검사 수치로 확인해야 하는 것들
저탄고지식단을 한다면 몸무게만 볼 게 아니라 검사 수치를 함께 보는 게 좋습니다. 최소한 시작 전과 2~3개월 뒤에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총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 H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간기능, 신장기능 정도를 확인하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에서 소개한 연구에서는 저탄수화물·고지방 식사 패턴이 LDL 콜레스테롤 상승 및 심혈관 사건 위험 증가와 관련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American Heart Association은 매우 낮은 탄수화물 또는 케토식 식단이 장기적인 심장 건강 지침과 잘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 보고 오래 밀어붙일 식단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식단을 멈추고 상담이 필요합니다
- 심한 어지럼, 식은땀, 손떨림, 혼란감이 생길 때
- 구토, 복통, 숨이 가쁘고 입에서 과일 냄새 같은 냄새가 날 때
- 가슴 통증, 호흡곤란, 한쪽 팔다리 힘 빠짐이 있을 때
- 변비가 심해지고 복부팽만이 오래갈 때
- 생리 불순, 탈모, 심한 피로감이 지속될 때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은 있습니다
솔직히 평생 밥, 과일, 콩, 통곡물을 거의 끊고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에게는 극단적인 저탄고지식단보다 “탄수화물의 양과 질을 조절하는 방식”이 더 오래 갑니다. 예를 들어 흰쌀밥을 매끼 큰 공기로 먹던 분이라면 반 공기에서 3분의 2공기 정도로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를 먼저 먹는 방식만으로도 식후 혈당이 덜 출렁일 수 있습니다.
지방을 먹더라도 종류가 중요합니다. 버터, 생크림, 기름진 가공육을 많이 먹는 방식보다는 생선, 견과류, 올리브오일, 아보카도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을 적당히 넣는 편이 낫습니다. 단백질은 달걀, 생선, 두부, 살코기, 콩류처럼 선택지를 넓히면 식단이 덜 지칩니다.
- 밥과 면은 줄이되 완전히 끊는 방식은 신중하게 선택하기
- 채소, 해조류, 버섯으로 식이섬유를 충분히 챙기기
- 포화지방이 많은 버터, 가공육, 기름진 고기는 자주 먹지 않기
- 체중보다 혈압, 혈당, LDL 콜레스테롤 변화를 같이 보기
- 3개월 이상 지속할 계획이라면 의료진과 검사 일정 잡기
저탄고지식단은 누군가에게는 식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식단은 체중계 숫자만 빠르게 바꾸는 식단이 아니라, 내 혈관과 장, 일상 리듬까지 무리 없이 따라오는 식단에 가깝습니다. 밥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몸이 보내는 신호와 검사 수치를 놓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Cochrane 저탄수화물 식단 리뷰(https://www.cochrane.org/evidence/CD013334_low-carbohydrate-diets-or-balanced-carbohydrate-diets-which-works-better-weight-loss-and-heart), American Heart Association 식단 평가(https://newsroom.heart.org/news/10-popular-diets-scored-for-heart-healthy-elements-some-need-improvement),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keto-like diet 보도자료(https://www.acc.org/About-ACC/Press-Releases/2023/03/05/15/07/Keto-Like-Diet-May-Be-Linked-to-Higher-Risk), NCBI Bookshelf Low-Carbohydrate Diet(https://www.ncbi.nlm.nih.gov/books/NBK5370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