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식단, 체중은 빠지는데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얼마 전 상담실에서 “밥을 거의 끊고 고기랑 버터 위주로 먹었더니 2주 만에 3kg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탄고지식단을 시작하면 초반 체중 변화가 꽤 눈에 띄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전부 지방이 빠졌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몸에 저장돼 있던 글리코겐과 수분이 함께 빠지면서 체중계 숫자가 먼저 내려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탄고지식단은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 비율을 높이는 식사 방식입니다. 흔히 ‘키토식’이라고도 부르는데, 엄밀한 케토제닉 식단은 하루 탄수화물을 20~50g 정도로 아주 낮게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바나나 1개에 탄수화물이 약 25~30g 들어 있으니, 생각보다 제한 폭이 큽니다.
저탄고지식단이 몸에서 하는 일
우리가 밥, 빵, 면, 과일 같은 탄수화물을 먹으면 몸은 포도당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씁니다. 그런데 탄수화물이 크게 줄면 몸은 지방을 분해해 ‘케톤체’라는 연료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를 흔히 케토시스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탄고지식단을 하면 식욕이 줄었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방은 소화가 비교적 천천히 되고, 탄수화물 섭취가 줄면서 혈당 출렁임이 덜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차이가 큽니다. 어떤 분은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며칠 동안 머리가 멍하고 짜증이 늘거나 변비, 두통, 피로감을 겪기도 합니다.
초기 1~2주에는 몸이 연료 사용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라 불편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물과 전해질이 빠지면서 어지럽거나 다리에 쥐가 나는 느낌을 호소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때 무작정 더 버티는 방식보다는 내 몸 반응을 차분히 확인하는 쪽이 낫습니다.
살이 빠질 수는 있지만, 방식이 중요합니다
저탄고지식단으로 체중이 줄 수는 있습니다. 특히 흰쌀밥, 과자, 빵, 달달한 음료를 많이 먹던 분이 탄수화물을 줄이면 총 섭취 열량도 같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체중과 혈당 수치가 좋아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으로 지방을 채우느냐’입니다. 삼겹살, 베이컨, 버터, 치즈, 가공육 위주로 지방을 늘리면 포화지방 섭취가 크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미국심장협회는 심혈관 건강을 위해 포화지방 대신 불포화지방을 선택하고, 채소와 과일, 통곡물, 좋은 단백질을 포함하는 식사 패턴을 권합니다. 저탄고지를 하더라도 올리브오일, 견과류, 아보카도, 등푸른 생선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을 중심에 두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
또 하나는 섬유질입니다. 밥과 과일, 콩류, 통곡물을 크게 줄이면 변비가 생기기 쉽고 장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채소를 충분히 먹는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잎채소 몇 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로콜리, 버섯, 오이, 양배추, 가지, 애호박 같은 채소를 매끼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분들은 시작 전 상담이 필요합니다
저탄고지식단은 모두에게 가볍게 권할 만한 방식은 아닙니다. 특히 당뇨약을 복용 중인 분은 탄수화물을 갑자기 줄이면 저혈당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인슐린이나 설폰요소제 계열 약을 쓰는 분이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신장질환, 간질환, 췌장질환, 담낭 문제, 통풍 병력이 있는 분도 의료진과 먼저 상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분, 성장기 청소년, 섭식장애 경험이 있는 분에게도 강한 식단 제한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 당뇨약이나 인슐린을 사용 중인 경우
- 신장 기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경우
- 간수치가 자주 높거나 지방간이 심한 경우
- 통풍, 요로결석 병력이 있는 경우
- 임신, 수유 중이거나 성장기인 경우
- LDL 콜레스테롤이 높거나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이런 조건이 있다면 혼자 식단을 크게 바꾸기보다 혈액검사와 복용약 확인을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LDL 콜레스테롤이 오르는 분들이 있어서, 시작 전과 2~3개월 후 수치를 비교해보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신호도 있습니다
식단을 바꾼 뒤 몸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과 진료가 필요한 신호는 구분해야 합니다. 심한 갈증, 잦은 소변, 구토, 복통, 숨이 가쁜 느낌, 과도한 무기력감이 생기면 바로 진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당뇨가 있는 분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케톤산증 같은 위험한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가슴 통증, 실신할 것 같은 어지러움, 한쪽 팔다리 힘 빠짐,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은 식단과 관계없이 응급 평가가 필요합니다. 체중감량 중이라도 이런 신호를 “적응 과정”으로 넘기면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오래 가는 저탄고지는 조금 다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완벽하게 탄수화물을 끊으려다 며칠 만에 폭식으로 이어지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극단적인 방식보다 ‘줄일 탄수화물’과 ‘남길 탄수화물’을 나눠보는 쪽을 더 자주 권합니다.
예를 들면 달달한 커피, 주스, 과자, 야식 라면은 먼저 줄이고, 밥은 반 공기 정도로 조절합니다. 대신 단백질은 생선, 달걀, 두부, 닭고기, 살코기 중에서 고르고, 지방은 올리브오일이나 견과류처럼 질 좋은 쪽으로 채웁니다. 이렇게 하면 저탄고지의 장점은 일부 가져가면서도 부담은 줄일 수 있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은 누군가에게는 체중 조절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 맞는 만능 식단은 아닙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와 검사 수치를 같이 보면서 조절해야 오래 갑니다. 식단은 의지력 시험이 아니라 내 생활에 맞게 다듬어가는 도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Harvard Health Publishing, The Nutrition Source, American Heart Association.
